오래간만에 또 중국역사를 한번 쓸까합니다.. ㅎㅎ
오늘 쓸 내용은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 - "아주 친한 친구 사이" 입니다.
누구나 잘 아는 성어이지만 그 유래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죠!!!
시대 배경은 춘추시대 패자 중 하나인 제나라 입니다..
이 제나라가 바로 첫패자입니다.
제나라를 패자의 나라로 만든 '관중'과 그의 절친인 '포숙아'의 의리를 가진 사이라 '관포지교' 란 성어가 생겼죠
관중은 제나라의 재상이며, 제환공을 당시 춘추시대 때 패자로 등극을 시킨 제갈공명에 버금가는 인물입니다.
당시에 제나라에는 두 왕자가 있었는데 형은 규, 동생은 소백 이었는데...
관중은 규에게 붙고, 포숙아는 소백에게 붙어서 왕권경쟁을 하게 됩니다.
관중이 활로 소백을 죽이려고도 했었지만, 실패합니다.
결국 규는 실패하여 쫓겨나게 되는데... 관중이 좀 얍삽한 면이 있는데 자기가 모시던 주군이 쫓겨났을 때 자신은 원래 죽어야 하는데...
우기죠... '나는 천하를 위해 규를 섬긴 것이지 규를 섬긴게 아니다'라고 하며, 살려달라고 합니다. 좀 비굴하게... ㅋㅋ
모든 신하들이 관중을 죽이려고 할 때 포숙아가 나서서 관중의 뛰어난 능력을 변호하여 관중을 살립니다.
그리고, 원래 포숙아가 재상의 자리를 갈 수 있었는데 오히려 관중을 천거를 하게 됩니다.
이때 포숙아가 한 말이 '공께서 제나라만을 다스리려면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천하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관중이 재상이 되어야 합니다.' 라고...
그 후 관중은 소백을 왕(환공)으로 만들고, 모시며, 제나라를 패자로 만드는 재상이 됩니다.
제나라가 패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관중의 "공정한 인사의 성공"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중이 죽고 난 다음에 환공의 인사의 실패로 바로 패자를 잃게 되죠~~~
얼마나 공정한 인사가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관중이 죽을 때 했던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좀 길지만 쓰렵니다.
" 가난할 때 포숙이랑 장사를 할 때 늘 내가 이익을 많이 가져갔다.
그래도 포숙은 내가 가난한걸 알았기 때문에 욕심쟁이라 하지 않았다. "
" 내가 포숙을 대신해 일을 하다가 실패를 하였다.
그러나 운세에 따라 잘안될 수도 있기 때문에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하지 않았다. "
" 일찍이 세번이나 벼슬길에 나갔지만, 쫓겨났다.
포숙은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 그렇다고 하며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 하지 않았다. "
" 세번 싸움에 나가 세번 다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 공자 규가 졌을 때 내가 죽지 않자, 포숙은
나를 작은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큰일에는 부끄러워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
"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이다. "
요즘은 정말 찾기 힘든 우정이지만,
그래도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일아라 더욱 더 감동이 큽니다,
요즘도 있으려나~~~~ ㅎㅎㅎ
한글날..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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