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찾아서

조선의 근대역사 이야기

네오류이 2020. 12. 1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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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역사지킴이가 왔습니다.

 

그동안 제가 무지무지 좀 바빴습니다. 개발 땜빵을 좀 하느라 시간이 넘 없었네요..

머.. 지금도 비슷합니다~~.. 그나마 이제 숨은 쉴수가 있네요.. 휴~~~

요즘 조선말에 대해 역사글을 쓰고 있는데...

지난 시간에 3일천하 갑신정변에 이어 1차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썼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후 이야기를 좀 쓰려고 합니다.

갑신정변을 정리한 청나라는 기세등등하고, 일본은 피해보상하고라고 하고, 탐관오리로 인한 농민의 반란으로 인해 나라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갑니다.

 

조선은 천장에 걸린 굴비가 되어...

먼저 먹는 자가 임자가 되는 꼴이 되고, 서로 먹겠다고, 청나라와 일본이 한판 붙습니다.

그게 바로 청일전쟁(1894) 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싶이 일본이 이기게 됩니다.

결국 일본의 힘이 커지는걸 원치 않앗던 러시아가 슬그머니 찝접되면서 '삼국간섭' 의 구도가 되게 되고,

고종과 황후는 일본의 견제를 위해 러시아를 조선에 끌어들이게 됩니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자국의 문제를 외국의 힘으로 해결을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미련덩어리 입니다.

조선을 보면 증명이 되죠~~. 그리고 역사는 항상 반복됩니다.

 

결국 일본은 눈의 가시인, 조선의 세력의 주축인 민씨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명성황후'를 제거하는 '여우사냥'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명성황후 제거에 가담한 자가 지금 '아베'의 조상 중 한명이 있죠~~ (오시마 요시마사)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관리가 아닌 '사무라이'을 이용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명성황후는 우리가 아는 그런 인물이 아닙니다.

 

자신의 민씨세력을 중앙정치에 최대한 기용하여

또다른 세도정치의 발판을 만들라고 시도했었고...

고종과 흥선대원군을 이간질을 하여 그 틈을 노려 세력을 키웠으며,

농민반란 때도 백성을 '가차없이 죽여버려라' 라고 얘기도 햇었죠. (이건 그럴수도..)

 

일본 사무라이에게 죽을 때도 '나는 국모이다' 이란 말 한적 없습니다.

사무라이를 피해 뒤쪽으로 도망가다 잡혀서 그자리에서 칼에 베여 죽고, 불태워졌죠...

 

물론, 일본의 만행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명성황후'가 조선을 위해 희생하고,

고귀한 것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이런 부분은

올바른 역사지식과는 동떨어진 내용입니다.

 

차라리 내조를 잘해 대원군과 고종이 잘 화합시켰으면...

또다른 역사가 펼쳐졌을지도 모릅니다.

여튼,

그리하여 '명성황후'가 죽고, 일본의 내정간섭은 점점 조여오게 됩니다.

고종을 협박하여 각종 칙령을 공포하게 하여 점점 허수아비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에 고종은 어느 날 일본의 감시가 약한 틈을 노려 궁궐을 빠져나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게 됩니다.

이것을 '아관파천'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러시아 공사관에서 일본을 견제하려 하지만, 아시다싶이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

러시아가 이것저것 고종에게 요구하게 됩니다.

결국 그놈이 그놈.. 일본이나, 러시아나, 청나라나. 다 똑같은 것들...

결국... 일본과 러시아가 또 한판을 붙게 됩니다...

 

그 후 얘기를 기대해 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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