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찾아서

제사에 대해

네오류이 2020. 12. 1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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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추석에 쓴글 다시 올립니다 -

안녕하세요. 추석^^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추석이기도 해서 '제사'에 대해 글을 함 쓰고자 합니다.

 

원래는 쓰고 싶은 말은 긴데 엄청 축약했어요..

여기서 혹. 이견이 있으시더라고 이해해 주세요.

 

사실 제사란 것은 이미 아주 고대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이고,

제정분리 시대 때는 보통 여자가 제사장이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죠. 점도 치고..

 

그후 제정일치가 되어 왕이 제사를 같이 지내게 된 것입니다. 즉, 권력의 중앙화.

 

이 부분에서 보면 제사란 것은 왕 또는 귀족의 고유의 권한이었고, 일반인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죠.

그렇다면 제사가 일반적으로 어느정도 보편화가 된 것은 유교에 의해서 였고,

일반 성씨계급(우리로 치면 종친?)도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정립하게 됩니다.

 

그것을 주창한 사람이 남송의 '주자' 란 학자입니다.

(개인적으로 안좋아함)

 

이 부분에서 좀 볼 것이.. 남송시대 때는 몽고의 원나라의 힘이 커져서 중국의 중원을 재패한 상태입니다.

 

남송의 상태는 풍전등화였기 때문에 유교의 기본인 효사상을 충효사상으로 그리고, 오경을 더욱 확대하고 정립하여,

조상숭배 + 왕권강화를 통해 현 위기를 타파하려 했죠.

그래서 유학을 집대성하여 성리학(주자학)을 창시한 것이죠..

머 결국 아시겠지만, 원나라에 의해 송은 멸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후,

 

지금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제사를 지내지는 않습니다.

마을에 공동비석이 있어서 그곳에 가서 향 한번 피우고 절하는게 다죠!!! 아니면, 자기집 사당에서..

음식이라고 해야 과일, 포 정도가 다입니다.

 

이 주자 사상을 몇백년 후 조선이 이어가게 됩니다.

즉, 고려 중심적, 불교 중심적 사상을 없애기 위해... 유교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일반 백성은 제사를 지내지 않죠...

 

이때도 제사는 왕, 뼈대있는양반, 성씨종친 정도.. 했으니. 아마 전체인구의 3%도 되지 않습니다.

일반백성이 지낸 제사라고는 물 떠놓고 천지신명께 비는 토속신앙 정도~~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전국민이 제사를 지내는 형태는 언제 나왔을까요?

조선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재원확보를 위해 나라에서 양반 족보를 팔게 됩니다.

그동안 5%내외의 양반계급이 30%(?기억안남) 까지 올라가게 되죠..

 

대부분 상인계급에서 양반을 하게 되면서, 그리고, 유교의 고착화를 통한 형식주의가 팽배하게 됩니다.

즉, 상인계급이 양반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기존 양반이 무시를 하겠죠... 이것을 덮기 위한 방법으로 소위 돈지랄을 하게 됩니다.

 

그중에 하나가 나라의 왕이 지내는 급의 제사를 자신들이 하는거죠.. 일종의 과시욕...

사실 열녀, 며느리의 칠거지악 부분만 해도 조선초중기에는 없었죠...

 

신사임당만 해도 자식인 이이 선생을 자신의 친정에서 낳았고, 유년기를 친정에서 키웠죠.. 그때는 이게 일반적이었죠. 고려때는 더 심했습니다.

 

즉, 서로 유교 교리 및 과시욕에 칩착하는 사이... 조선말을 지나 갑오개혁이 되면서 신분제가 철폐가 됩니다.

우리나라 성씨에 김, 이, 박 씨가 너무 많고, 전체인구의 거의 절반에 다다르는데..

그 이유가 당시의 신분제 철폐가 되면서 노비나 관계된 양인들이 모두 각자가 모시던, 또는 거래하던 양반집안의 성씨를 그냥 쓰게 되면서

졸지에 자신들도 가짜족보를 가지게 되면서 양반 행세를 하게 됩니다.

 

지금 현재 진짜 양반이 누군지 솔직히 모릅니다. 저두 그렇고, 족보를 믿기가 힘들다는...

그러니 위에서 얘기되었던, 제사 부분에 집착을 한 계기가 됩니다.

 

하나둘 상다리 뿌러지게 하려하죠,, 그로 인해 모두다 더욱 더 형식에 얽매이고, 양반의 권위에 들어가려 합니다.

지금 우리가 지내는 제사 규모는 왕이 지내는 제사의 규모입니다. 해도 너무 한거죠..

제사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할 때 형식과 절차, 방식에 너무 얽매이는게 문제이죠.

유교는 사실 매우 유연한 종교입니다. 상당히 자유분방하죠.. 그래서 제자백가 사상 중 가장 크게 발전 한 것입니다.

즉, 가족의 모임에 대한 의의만 생각한다면, 형식과 절차, 방식은 바꾸는 것은 유교교리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공자 선생께서 제사를 거하게 잘 지내야 한다고 한적 없고, 다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사랑해라.. 그리고 백성을 자식을 사랑하듯 다스려라'

이게 공자선생이 하신 말씀을 간단정리한 것입니다.

나라의 충성을 유도하고, 교리를 형식화 시킨 건 주자이고,

그걸 더욱 더 고착화 시킨 건 조선의 양반 또는 가짜 양반이죠..

 

저는 제사를 지내실 때 그 의의와 변천과정을 알고 지내시는 것이 중요하며,

변형시키시는 것도 가능하리란 생각에 몇자 씁니다.

여기서 잠깐..

제사를 왜 지내는 걸까요?

유교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효사상을 이어받아 조상을 믿는 것이고,

통상 영혼이 이 세상에 약 200년을 살고 혼이 흩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4대까지 제사를 지내는겁니다.

 

즉, 혼백... 백은 죽어 썩는 시체, 혼은 천상을 떠다니는 영체를 의미합니다. 그 혼을 그 부모를 계속 모시는 거죠..

종묘사직 이란 말도 들어 보셨을텐데.. 종묘란게 왕의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고, 사직은 농사를 의미,

즉, 백성을 의미합니다.

 

짤상식..

즐거운 추석 명절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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